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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Economy)

한국 IMF 외환위기 원인과 한국 정부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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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1970년~1980년까지 빠른 성장세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이나 유럽보다 빠른 발전 속도였다. 1990년대에는 외국 자본이 아시아로 대거 흘러들었다. 우리나라 역시 금융자유화, 금융시장 개방 등 외국 자본이 빠르게 유입됐다. 당시 금융기관들은 외국 자본을 빌려 기업이 발행한 어음을 사들였다. 이로써 자연스럽게 외국에 진 빛도 늘어나게 됐다. 그러다 어음을 발행한 기업이 부도가 나자 그 기업의 어음을 사들인 금융기관들도 몹시 어려움을 겪게 됐다.



1997년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위기를 맞는다. 외국 투자자들이 빌려주거나 투자한 자본을 거두어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국제 통화인 '달러'가 부족해 자국의 화폐 가치를 크게 떨어트리게 되는 외환 위기를 겪게 된다.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 경제에도 불안감을 느꼈다. 결국 한국에서 투자한 자본을 거두어들이기 시작한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기업을 부도나게 한 다음 낮은 가격으로 사들이려는 목적도 배제할 수 없었다.



외국 자본이 점차 빠져나가면서 우리나라의 수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게 됐다. 기업이 연쇄적으로 도산하게 되자 외화보유액이 급감했다. 외환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한때 외화보유액이 39억 달러까지 급감했다. 이에 정부는 어쩔 수 없이 국제통화기금 IMF에 20억 달러 긴급 융자를 요청하게 된다. IMF는 한국에 외환을 지원해주는 대신 기업 구조조정과 공기업 민영화, 자본시장 추가 개방, 기업 인수합병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을 내걸었다. 1997년 12월 3일 정부는 이들의 조건을 수락함과 동시에 IMF 관리를 받아 국가 경제를 운영하기로 약속하게 된다. 결국 IMF 195억 달러 구제금융을 받아 간신히 국가부도 사태를 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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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IMF 외환위기 원인은 태국, 홍콩,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이사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연쇄적 외환위기 속에 대한민국 정부의 외환관리 정책의 미숙이 IMF 환란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당시 대통령은 1997년 11월 10일 이뤄진 경제부총리와의 통화 이전까지 외환위기의 심각성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많은 회사들이 부도, 경영위기를 겪었고 이 과정에서 대량 해고와 경기 악화로 대한민국 온 국민이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하지만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도 국민들의 단합력은 세계 제일이었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요청 당시 대한민국 외환부채는 약 304억 달러였다. 이에 국민들은 자신이 소유한 금을 하나둘씩 나라에 내어놓는다. 다른 조건은 없었다. 오로지 나라를 위해 써달라는 마음뿐이었다. 전국 누계 351만 명이 참여한 금 모으기 운동으로 약 227톤의 금이 모이게 된다. 이는 약 21억 3천 달러어치의 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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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2월 김영삼 대통령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이 시작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계속해서 IMF의 개입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고 경제개혁에 착수했다. 독점 재벌의 해체, 공기업의 민영화, 부실기업 정리, 노동자 정리 해고의 간편화, 소비 촉진 등 경제 구조를 개편하고 경제 정책도 크게 바꾸었다. 그러다 1998년 12월 IMF 긴급 보관 금융에 18억 달러를 상환한 것을 계기로 대한민국은 서서히 금융위기로부터 빠져나가게 된다. 이는 예정보다 IMF 관리 체제를 일찍 끝내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 결과 2000년 12월 4일, 김대중 대통령은 국제 통화 기금의 모든 차관을 상환했고 대한민국이 IMF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공식 발표하게 된다. 2001년 8월 23일, 대한민국에 대한 IMF 관리 체계는 모두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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